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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인터뷰, 한기웅 “실력과 절박함이 운명을 만든다”

배우 한기웅. 얼마 전 케이블채널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2’(이하 ‘막영애’)의 방송을 마쳤다. 극 중 영애(김현숙)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연하남’ 한기웅 역을 맡아 ‘막영애’ 시리즈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단역으로 데뷔했고, 올 초 화제 속에 막을 내린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형 한기원과 함께 쌍둥이 형제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내년 초 ‘막영애’ 시즌13의 출연도 앞두고 있다. 시즌12에서 영애와의 본격적인 로맨스를 예고한 만큼, 비중도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작품 수로는 3편, 정식으로 데뷔한 지는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소설 같은 인터뷰: 취재한 내용을 좀 더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한기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각색한 1인칭 시점의 소설. 〈편집자 주〉

“컷! ‘막영애’ 시즌12 촬영 끝났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분주했던 촬영장에 적막이 흐르고, 만족감보다는 아쉬움만 진하게 남은 나의 세 번째 작품을 그렇게 끝을 맺었다. 지난 5개월간 ‘막영애’ 속 ‘한기웅’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골수팬이 많았던 ‘막영애’의 새 멤버로 합류해 기대와 불안의 시선 속에 하루하루를 견뎌낸 시간, 그 시간은 ‘배우 한기웅’의 연기인생의 첫 번째 변곡점으로 자리할 것만 같았다. 

무언가에 미친 듯이 빠져드는 시간.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된다는 그 순간이 내게는 조금 빨리 찾아왔다. 아직도 눈만 감으면 내 눈은 중학교 2학년 때의 어느 순간을 쫓는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살 적에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병헌과 전지현이 우리 동네를 찾은 적이 있었다. SBS 드라마 ‘해피투게더’ 촬영 때문이었다. 나와 형(한기원)은 촬영 스태프가 “꼬마야, 뭐하니?”하고 물어도 대답이 없을 만큼 그들의 연기에 푹 빠져들었다. 결국, 우리를 찾으러 온 어머니 손에 끌려오다시피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인생의 어느 한순간이 남긴 기억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우리 형제의 가슴에 ‘연기’라는 푸른색 꿈을 심어놓았다.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았다는 얼핏 듣기에는 좋은 일일 것만 같지만, 그것은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부모님은 “그런 성격으로 배우가 될 수 있겠느냐”고 면박을 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 오디션을 볼 기회를 얻었지만, 아들들이 못 미더워 오디션장을 찾았던 어머니는 그날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못 박아 말했다. “수능 준비해서 대학에나 들어가거라.” 

우리 형제의 우애는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빛을 발했다. 마음속 가득한 열망을 달리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던 나와 형은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배우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삭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 리가 있나. 결국,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 우리 형제는 학원비로 받은 돈을 들고 ‘연기 아카데미’를 향했다. 부모님 몰래 3~4개월을 국·영·수가 아닌 연기를 공부한 우리는 그렇게 연기와 관련된 학과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부모님께선 학원비를 빼돌린 사실을 알게 되셨으니…. 평소 거짓말 한 번 하지 않은 순진함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대학’을 떠나 군대로 향한 나는 그 안에서 네모난 TV 화면만 보며 꺼질 듯이 위태로이 타오르던 ‘연기’에 대한 꿈을 재확인했다. KBS2 ‘아이리스’와 ‘추노’를 시청한 나는 딱 두 가지 생각만 하게 됐다. 첫째, 연기를 정말 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둘째, 남자는 근육이다. 생각이 단순하면 행동에도 거침이 없어지는 법이다. 그 후로 남은 시간은 제대 후의 핑크빛 미래를 그리며 운동에 매진했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쌍둥이 형제 배우’라는 수식은 분명 양날의 검과 같았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종 예선에 오른 형제 참가자에게 “둘 중 한 명만 올라갈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라고 묻는 악랄한 심사위원처럼, 우리 형제도 지금의 소속사(제니스미디어콘텐츠)에 둥지를 틀기까지 수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기회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첫 데뷔작 MBC ‘빛과 그림자’에서 정말 ‘빛’처럼 빠르고, ‘그림자’처럼 존재감 없이 사라진 나는 이듬해 운명처럼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만나게 됐다. ‘어디 또 쌍둥이 형제 배우가 있겠어?’하는 생각으로 당당히 오디션장으로 향했던 기세도 잠깐, 우리는 입구에 들어서며 두 팀의 ‘쌍둥이 형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최종 오디션에 올라 ‘쌍둥이 형제’ 배역 후보에 오른 팀이 일곱 팀이라는 사실을 듣게 됐다.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에 정신을 놓고 있을 틈이 없었다. 착실히 꿈을 위해 준비해온 우리는 실력과 절박함으로 승부했고, ‘너목들’에 출연을 확정 지었다. ‘많이 닮지 않았다’는 평가를 뒤집으려고 가르마 방향부터, 자고 먹는 생활 방식 모두를 서로에게 맞췄던 우리의 노력은 결국 ‘너목들’을 통해 빛을 보게 된다. ‘쌍둥이’가 아닌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품 수로는 3편, 정식으로 데뷔한 지 2년 만에 꿰찬 ‘막영애’의 한기웅 역의 무게가 절대 가벼울 리가 없다. 매일 내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모니터하며 ‘내가 도대체 왜 저렇게 연기했을까?’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때도 잦다. 때론 ‘꽃미남’이란 수식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부족한 연기력에 대한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 시절 드라마 촬영 현장을 보며 가슴 속에 심었던 푸른 꿈을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도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기해나갈 것이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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